해킹 위협 속 금융사들 보안예산 70% 미집행…관리 부실 드러나
전산장애 상위 20개 금융회사의 지난해 정보보호 예산 집행률이 69.6%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은행(53.8%), 국민은행(58.1%) 등 대형 은행들의 집행률이 특히 낮으며, 일부 금융회사는 올해 보안 예산을 오히려 줄여 해킹 위협 속에서 관리 부실이 심각한 상태다.

금융권에서 해킹 사고와 전산장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정작 전산장애 발생이 잦은 금융회사들이 정보보호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산장애 발생 상위 20개 금융회사의 지난해 정보보호 예산 집행률은 69.6%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편성된 예산의 3분의 1 가량을 사용하지 않은 셈으로, 고객의 금융정보 보호라는 중대한 책임을 다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조사 대상 20개 금융회사 중 절반을 넘는 11곳이 편성 예산의 80% 이상을 미집행한 것으로 나타나 상황의 심각성을 더한다. 특히 대형 은행들의 집행률이 특히 낮았다. 우리은행은 53.8%의 집행률로 편성액의 절반 수준에 그쳤으며, 국민은행과 수협은행도 각각 58.1%, 60.7%에 머물렀다. 이들 은행이 보유한 고객 자산과 개인정보 규모를 감안하면, 이 정도의 예산 집행률은 충분한 보안 체계 구축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일부 금융회사들이 올해 정보보호 예산을 오히려 줄였다는 점이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786억5900만원에서 올해 615억6600만원으로 21.7% 감액해 조사 대상 중 감소 폭이 가장 컸다. 한국씨티은행도 지난해 88억9900만원에서 올해 72억9700만원으로 18.0% 줄였고, 신한은행은 452억9400만원에서 405억9100만원으로 10.4% 감액했다. 이 외에도 한화생명보험(2.8%), 한국산업은행(2.2%), 케이뱅크(1.7%),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0.9%) 등 7곳이 정보보호 예산을 축소했다. 해킹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보안 투자를 줄이는 것은 위험 관리 측면에서 역행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같은 현상은 금융당국의 감시 체계가 형식적 수준에 머물렀음을 시사한다. 금융회사들이 편성한 예산을 충분히 집행하지 않는 것을 금융당국이 제대로 적발하고 개선하도록 지도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박성훈 의원은 "국민의 금융정보가 해커들의 공격에 노출되는 동안 금융회사들은 보안예산조차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고, 금융당국은 형식적인 점검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고객 자산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금융회사들과 이를 감시해야 할 금융당국 모두의 책임 부재가 드러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예산 편성 여부뿐 아니라 실제 집행 현황과 보안 취약점 개선 실적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 의원은 "사고가 터질 때마다 뒷북 대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보안투자와 취약점 관리 실태를 전면 점검하고, 관리 부실이 확인된 금융회사와 감독당국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권의 보안 관리 체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고객들의 금융정보 유출 위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