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억 해킹에도 고객 자산 지킨 비트겟…국내 거래소 보호장치는 충분한가
글로벌 거래소 비트겟이 5천억원대 해킹 피해에도 자체 기금으로 전액 보전한 반면, 국내 거래소의 준비금 규모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대규모 해킹 사고 시 이용자 자산 보호 절차를 명확히 하는 제도 보완을 추진 중이다.

최근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겟이 약 3억8800만달러(약 5천억원대) 규모의 가상자산 유출 사건을 겪으면서 국내 거래소의 이용자 자산 보호 체계가 주목받고 있다. 비트겟은 해킹 직후 자체 이용자보호기금 4억6400만달러 이상을 투입해 모든 고객의 계정 잔액을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중단했던 출금 서비스도 순차적으로 재개해 지난 2일 완전히 정상화했다. 이는 대규모 해킹 피해 상황에서도 고객 자산을 지키려는 거래소의 노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보호 체계가 과연 이 정도 수준의 피해에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국내 원화 거래소는 이용자 자산 보호를 위해 다층적인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고객이 맡긴 가상자산과 동일한 종류와 수량을 거래소가 실제로 보유하는 것이다. 이는 거래소가 고객 자산을 대출하거나 유용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조치다. 두 번째 단계는 보유 자산의 80% 이상을 인터넷과 분리된 콜드월렛에 보관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해킹 위험을 최소화한다. 콜드월렛은 온라인 네트워크와 차단된 물리적 저장소로, 해커들이 접근하기 매우 어렵다. 세 번째 단계는 사고 발생에 대비한 별도의 재정적 준비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거래소들은 상당한 규모의 준비금과 보험을 확보하고 있다. 업비트 운영사인 두나무와 빗썸은 각각 800억원의 준비금을 적립했으며, 코인원은 300억원, 코빗은 190억원을 보유 중이다. 고팍스 운영사인 스트리미는 보상한도 30억원의 보험에 가입했다. 이들 금액은 콜드월렛에 보관한 자산을 제외한 이용자 가상자산 가치의 5% 이상을 확보하도록 규정된 것으로, 최소 30억원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 기준은 매월 다시 산정되며, 기준에 미달하면 보상한도를 높이거나 준비금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준비금 규모가 대규모 해킹 피해에 충분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비트겟의 경우 5천억원대의 손실을 자체 기금으로 전액 보전했지만, 국내 거래소들의 준비금 규모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준비금은 해킹 등 사고 발생 시 고객 보상을 위해 마련해 놓은 것이지만, 극단적인 사고가 발생하면 준비금 이상의 금액을 보상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는 해킹이나 전산사고 발생 시 사업자의 손해배상책임 범위와 입증책임을 구체적으로 정한 특별규정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용자가 피해를 입으면 원칙적으로 사업자가 보상하도록 규정되어 있지만, 대규모 피해로 거래소 자체의 지급능력이 훼손될 경우 신속한 보상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이용자 보상 절차를 마련해 운영 중이다. 이용자가 보상을 신청하면 원칙적으로 15영업일 이내에 심사를 완료하고 결과를 통지하며, 최소 두 차례의 이의제기 기회도 보장한다. 하지만 대규모 사고로 거래소의 손실흡수 능력 자체가 훼손될 경우 이용자 자산을 어떤 방식으로 신속하게 돌려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부족하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현재는 최소한의 기준이 정책에 반영돼 있지만, 이를 넘어서는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 절차 등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제도적 미비점을 인식하고 디지털자산기본법으로 불리는 가상자산 2단계 입법 정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관련 제도를 보완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비트겟의 사례처럼 대규모 해킹 피해 상황에서도 고객 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더욱 강화된 기준과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 거래소들도 단순히 최소 기준을 충족하는 수준을 넘어 자발적으로 보호장치를 강화하고, 사고 발생 시 신속한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이용자 신뢰 확보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