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점자 훈맹정음 100년, 손끝으로 열린 세상을 만나다
한글 점자 훈맹정음의 반포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개막했다. 박두성이 창안한 훈맹정음 점자표 등 국가등록문화유산 11점이 공개되며,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점자 병기, 촉각 모형, 음성해설 등 다양한 접근성 장치를 마련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에서 한글 점자 훈맹정음의 반포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개막했다. 지난 7일 개막한 '점에서 세상으로: 훈맹정음 100주년'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며, 국립한글박물관과 송암점자도서관이 함께 기획했다. 이 전시는 세계 점자의 탄생부터 한글 점자의 개발과 보급, 그리고 현대 생활 속 점자의 역할까지 시각장애인의 읽고 쓰는 권리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박두성이 창안한 훈맹정음 점자표를 비롯한 국가등록문화유산 11점이 한 자리에 모여 한글 점자의 발전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는 11월 4일은 송암 박두성이 1926년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반포한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날이다. 박두성은 1913년 제생원 맹아부 교사로 부임하며 시각장애인 교육에 헌신했다. 당시 일제강점기 상황에서 제자들은 일본어 점자만 배울 수 있었으나, 박두성은 자신의 모국어인 한글로 점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1923년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한 후 3년 만에 훈맹정음을 완성하고 반포했으며, 이후 전국의 시각장애인에게 우편으로 점자 교재를 보내는 통신교육을 펼치며 한글 점자를 적극 보급했다.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맹정음은 훈민정음의 의미를 계승하면서도 시각장애인의 손끝으로 읽을 수 있도록 설계된 문자 체계다.
훈맹정음은 한글의 초성, 중성, 종성을 구분하는 한글의 특성을 점자에 반영하여 받침이 있는 우리 글자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또한 자주 쓰는 글자는 약자로 만들어 시각장애인이 읽고 쓰기 쉽도록 설계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번역이 아닌 한글의 특성을 살린 창의적 결과물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26년 훈맹정음 점자표, 점자 교육 자료인 '한글 점자 쓰는 법', 박두성이 사용한 족답식 제판기와 점자 타자기 등이 공개된다. 1933년 일본맹인협회에서 기증한 제판기는 금속 인쇄판에 점자를 새기는 기계로, 자판으로 점자 한 글자를 친 후 발로 페달을 밟아 새기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도구들은 한글 점자의 탄생 이후 그것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기울인 박두성의 노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전시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여섯 개의 점: 세계 점자'는 점자의 발상지인 프랑스를 중심으로 세계 점자의 역사를 다룬다. 1784년 파리에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학교를 설립한 발랑탱 아위와 그의 제자였던 루이 브라유가 만든 6점식 점자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는지를 보여준다. 2부 '함께 하는 점: 한글 점자'에서는 박두성과 훈맹정음의 개발 과정을 집중 조명한다. 3부 '확장되는 점'은 한글 점자가 시각장애인의 삶과 권리를 어떻게 확대했는지 보여주는데, 1947년 '맹인 점자 사용 공인에 관한 건'과 같은 제도적 기록부터 점자정보단말기, 독서확대기, 점자가 새겨진 생활용품까지 다양한 자료를 통해 점자가 단순한 학습 도구에서 일상의 정보 접근 수단으로 확장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4부 '감각하는 점'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점자책을 만지고 읽으며, 자신의 이름을 점자로 써보는 체험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전시의 가장 특별한 특징은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전시 환경이다. 모든 설명문에 점자를 병기했으며, 주요 자료는 만져볼 수 있는 촉각 모형으로 제공된다. 음성해설도 운영되고 있다. 전시장의 동선에는 손과 발로 공간을 파악할 수 있는 여러 장치가 반영되었다. 벽과 진열장에는 안전 손잡이와 서로 다른 촉감의 재질이 붙여져 있으며, 공간의 시작점은 곡선, 진열장은 직선으로 배치하여 관람객이 공간을 예측할 수 있도록 했다. 주제별 공간색은 명도와 채도를 조절하여 저시력자와 색각 이상이 있는 관람객의 구분을 돕는다. 프롤로그에서는 엄정순 작가의 대형 촉각 미술품 '코 없는 코끼리 no.7'을 손으로 감상하며 시작하는데, 이는 눈으로 볼 수 없을 때 형태를 어떻게 떠올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손끝으로 문자를 읽는 점자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관람객을 이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실제 점자판과 점필을 사용해 전시를 본 소감이나 점자에 관한 생각을 직접 남길 수 있다.
김명인 국립세계문자박물관장은 "훈맹정음은 여섯 개의 점으로 시각장애인에게 읽고 쓸 권리를 돌려준 문자"라며 "반포 100주년을 맞아, 누구나 손끝과 귀로도 문자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전시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 전시는 시각장애인의 교육권과 정보 접근권이라는 인권 문제를 문화유산을 통해 조명하는 동시에, 모든 사람이 문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포용적 가치를 실현하는 공간이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인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내년 2월 14일까지 전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