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R 보고서
세계 최대 사모펀드 KKR이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아시아 핵심 투자 테마로 지목했다. 베어허그 M&A 입법과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주요 촉매로 평가하면서, 이러한 제도적 변화가 한국 증시에 새로운 투자 기회를 만들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사모펀드(PEF) 운용사 KKR이 한국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아시아 지역의 핵심 투자 테마로 지목했다. 지난 8일 KKR이 발간한 '현장에서 본 투자 전망: 유럽과 아시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단순한 국내 정책 차원을 넘어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그동안 반도체 산업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한국 증시의 투자 논리가 이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새로운 축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KKR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 성장이 반도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생태계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80%를 이들 산업이 차지했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20.9%와 비교하면 약 4배에 달하는 수치로, KKR이 추적하는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해와 내년 코스피 주당순이익(EPS) 증가분의 71%와 75%가 기술 업종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 증시는 여전히 반도체와 기술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코스피 기술 업종의 EPS 증가율은 올해 530%, 내년 44%로 전망되고 있다.
다만 한국과 일본의 기술 산업 수혜 방식은 상이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일본은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 소재, 화학제품 등 공급망의 상류에 위치하여 AI 수요 증가의 간접적 수혜를 받는 반면,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AI 데이터센터 수요의 최전선에 있다. 따라서 D램과 낸드 플래시 메모리 가격의 급등이 한국 기업의 실적에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다. 이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변동성이 클 수 있음을 의미하며, 메모리 가격 변동이 한국 증시의 최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KKR이 주목하는 새로운 투자 촉매는 '베어허그(Bear-hug)' 인수합병 관련 입법이다. 베어허그란 이사회가 원치 않는 인수 제안을 받아도 이를 반드시 공시하고 전체 주주 관점에서 공식적으로 평가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일본의 경제산업성(METI)이 도입한 가이드라인을 본떴으며, KKR은 현지 관계자들이 한국에서도 이 제도의 통과 가능성을 60~70%로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통과 확률이 아직 시장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을 수 있다는 KKR의 평가다. 이는 향후 입법 추진 과정에서 주식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여지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KKR은 입법만으로는 기업 지배구조 개혁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 국민연금 의결권 공시 확대, 사법부의 집행 역량 등 여러 요소가 함께 개선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기업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KKR은 한국이 일본의 기업 개혁 경로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 기업들은 일본 기업들에 비해 현금 보유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대신, 장부가 이하의 저평가 종목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대비 현금 비중이 일본 닛케이는 17.3%에 달했지만, 한국 코스피는 5.1%에 그쳤다. 이는 미국 S&P500의 5.3%과 유사한 수준이다.
KKR은 한국과 일본의 기업 개혁 움직임이 사모펀드에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의 투자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한국 증시의 리스크 요소로는 메모리 가격 변동성을 꼽았다. KKR은 메모리 가격이 적어도 2028년 초까지는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이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추가로 금리 환경도 부담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AI, 방위, 인프라, 에너지, 공급망 투자가 동시에 자본과 인력, 전력을 두고 경쟁하면서 물가와 금리가 구조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거시경제 환경 변화는 한국 기업들의 차입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기업 개혁의 효과를 상쇄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