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여성 살해 후 방화한 전 교제자, 심리 조종 범죄까지 조명
범죄 추적 프로그램이 23세 여성을 살해하고 방화한 사건과 함께 심리적 지배를 통한 범죄인 가스라이팅의 위험성을 조명했다. 현장의 화장지 흔적으로 범인을 추적한 과정과 장기간 심리 조종으로 피해자를 통제한 사례를 통해 주변의 관심과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티브이캐스트E채널의 범죄 추적 프로그램 '용감한 형사들5'가 25일 방송한 22회에서 서울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전말을 공개했다. 양일모 경감, 류승준 경감, 손정아 법의관, 박미옥 전 형사, 황명 박사 등이 출연해 현장에 남겨진 기묘한 흔적을 따라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이날 첫 번째로 소개된 사건은 당시 서울에서 발생한 그 해 첫 번째 살인 사건이었다. 현장을 담당했던 형사는 "현장이 매우 특이했다. 범인이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이런 짓을 했는지 많이 고민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사건은 주택가의 한 빌라 반지하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로부터 시작됐다. 소방대원들이 잠금 처리된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소화 활동을 벌이던 중 작은 방의 침대 위에서 23세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부검 결과 피해자는 화재 발생 전에 이미 사망했으며, 사인은 목 압박에 의한 질식사로 판명됐다. 형사들의 눈을 끈 것은 현장 곳곳에 남겨져 있던 롤 형태의 화장지였다. 피해자의 양손목을 비롯해 신체의 여러 부위에 화장지가 여러 겹으로 접혀있거나 감싸져 있었고, 방 안에서도 풀려난 화장지가 발견됐다. 화재가 시작된 장소는 피해자가 발견된 침대였다. 형사들은 범인이 화장지 등을 이용해 불을 붙인 것으로 추정했다. 더욱이 현관문까지 잠금 처리되어 있었던 점으로부터 피해자가 특별히 의심 없이 집 안으로 들인 얼굴 아는 사람에 의한 범행에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당시 피해자는 4살 위의 언니와 둘이서만 살고 있었다. 자매는 각각 교제 상대가 있었으며, 언니의 전 교제자와 피해자의 교제자도 서로 알고 지내는 근처 친구 사이였다. 특히 사건 당일 오전 피해자의 집을 방문한 남성이 있었다. 피해자의 언니의 전 교제자인 23세의 박 모 씨였다. 박 씨는 전 교제자가 집에 있을 거라 생각해 오전 10시경 방문했으나 사람의 기척이 없어 돌아갔다고 진술했다. 그 후 오후 7시경 귀가할 때까지 시내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형사들은 그의 행동에 약 9시간의 공백을 발견했다. 명확한 설명 없이 지나간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수사팀은 박 씨의 동선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새로운 진술이 나왔다. 사건 당일 피해자의 언니와 함께 있던 친구가 "아침에 박 씨가 찾아와서 화난 표정으로 대화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박 씨가 처음부터 전 교제자가 집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형사들은 박 씨를 다시 불러 범행 당일의 행동을 확인하는 한편, 당시 입고 있던 옷을 확보했다. 처음부터 같은 진술을 반복하던 박 씨는 옷을 제출한 다음 날 아버지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가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박 씨는 전 교제자와 복연하고 싶은 마음에서 피해자의 집을 방문했으며, 피해자가 자신의 부모를 욕하는 말을 했기 때문에 화가 나서 범행에 이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 씨의 주장에 곽소년은 "말이 안 된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현장에 남겨진 화장지의 정체도 밝혀졌다. 박 씨는 불이 빨리 번지도록 화장지를 여러 곳에 배치하고 방충제를 분사한 후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고 자백했다. 이후 재판에서 우울증이나 심신미약 등을 주장했으나 최종적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방송의 후반부에는 "끝나지 않는 사건Q" 코너를 통해 "가스라이팅"을 주제로 심리적 지배가 어떻게 범죄로 이어지는지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2022년 매춘을 한 남성의 신고로 표면화된 사건이었다. 신고자는 한 여성의 몸에서 심각한 상처를 발견한 후 피해자를 설득해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 결과 피해 여성에게 폭행을 가한 것은 남편과 오래 친하게 지내던 나이 많은 여성, 그리고 그 여성의 남편 총 3명이었다. 이들은 피해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성매매까지 강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여성과 가해 여성의 관계는 10년 이상 전부터 시작됐다. 직장생활을 통해 친해진 두 사람은 가족 이상으로 서로를 의지할 정도로 깊은 신뢰를 쌓았다. 그러나 피해자의 첫 결혼을 계기로 관계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이혼을 부추기고 피해 여성과 아이를 자택에 살게 한 후 생활비나 가사 등을 요구하며 생활 전반을 지배했다. 피해자의 급여를 빼앗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이 사망하면 그 책임까지 피해자에게 뒤집어씌우고 많은 돈을 요구했다. 결국 성매매까지 강요했다. 피해자가 이를 거부할 때마다 빚과 가족의 죽음을 꺼내 죄책감을 자극하고 협박을 계속했다. 이러한 상황은 약 3년간 지속됐으며, 피해자로부터 빼앗은 돈만 약 5억 원에 달했다고 전해졌다. 피해자는 한 번 도망쳤으나 다시 잡혀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됐다. 벗어날 수 없다는 공포에 아이에 대한 걱정까지 겹쳐 외부에 도움을 청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매춘한 남성이 피해자에게 도움을 제안함으로써 피해자는 비로소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다.
박미옥 전 형사는 그들의 관계에 대해 "말이 안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것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게 아니다. 스며드는 것처럼 그들이 자신의 심리 속에 존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황명 박사는 가족 간에 일어난 또 다른 사례를 통해 가스라이팅의 다른 측면을 지적했다. 20대 여성이 아버지의 불륜 증거를 찾아달라며 사진과 영상을 들고 황 박사를 찾아온 것이다. 여성은 사진 속 일부 형상을 아버지의 내연녀라고 확신했으나 분석 결과 실제 사람의 손이나 얼굴이 아닌 물체의 일부임이 확인됐다. 그 배경에는 오랫동안 남편의 불륜을 의심해온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딸에게 아버지의 불륜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했고, 성인이 된 딸도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반복되는 말과 의심이 결국 타인의 판단을 자신의 확신으로 받아들이게 한 형태였다.
권일연 프로파일러는 일상 속에서 가스라이팅을 구분하는 위험신호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단순히 상대의 행동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게 하기 시작한다면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신이 걱정되니까 하는 말인데 그 사람과 친하지 마", "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나 아니면 누가 이런 얘기를 해줄까"라는 식으로 상대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거나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을 통제하려는 행동도 경계해야 할 신호로 꼽았다. 권일연 프로파일러는 "본인이 파악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 가스라이팅 사건"이라며 주변 사람들이 위험신호에 눈치 채고 피해자가 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미옥 전 형사도 "주변이 알아차려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