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AI 경쟁 본격화…'AI 쓰는' 직원에서 'AI 만드는' 직원으로
국내 제조기업들이 AI를 단순 업무 도구에서 제조 현장의 동료로 전환하고 있다. 현대차는 충돌 사례 탐색 시간을 90% 단축했고, LG전자는 품질 예측 시간을 3~8시간에서 3분으로 줄였으며, 삼성과 포스코퓨처엠은 생산성 30% 향상을 목표로 AI 자율공장을 추진 중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더 이상 보고서 요약이나 이메일 작성 같은 단순 업무에만 머물지 않는다. 현대차,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퓨처엠 등 국내 주요 제조기업들이 AI를 제조 현장의 동료로 끌어들이면서 제조업의 AI 경쟁이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과거 IT 부서가 중심이 되어 AI 시스템을 개발하고 현업에 내려보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생산·품질·연구개발·공급망관리 담당자들이 직접 업무 문제를 찾아 AI 모델과 에이전트를 만들어 해결하는 구조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기술 도입 수준을 넘어 기업 조직문화와 업무 방식 자체를 재편하는 변화를 의미한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이 같은 변화의 선도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 6월 서울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AI Vibe Coding 해커톤 2026'에는 30개 팀 80명의 임직원이 참가했다. 중요한 점은 개발 전문가만 참여한 행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자신들의 업무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상을 받은 '가시나무' 팀은 지도 기반 시각화와 AI 분석을 결합해 공급망 위험을 파악하는 시스템을 제안했으며, 타이어 상품전략 수립과 글로벌 공장 품질 리스크 탐지 등 생산·품질·공급망관리와 직접 연결되는 과제들도 나왔다. 한국앤컴퍼니는 KAIST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과 함께 진행한 AI 경진대회에서도 현장 데이터를 중심으로 삼았다. 임직원과 대학원생들이 한 팀을 이루어 6주간 실제 데이터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배터리 셀 데이터로 충전 상태를 예측하는 모델이 대상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 모델 개발에 그치지 않고 향후 배터리관리시스템 양산 적용까지 고려한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AI의 주도권을 현업으로 옮기는 데 더욱 적극적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일반직과 연구직 약 80%가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H Chat Pro'를 활용하고 있으며, 직원들은 보안 환경 안에서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을 업무 특성에 맞게 선택해 문서 작성뿐 아니라 데이터 분석과 코드 개발에 사용한다. 특히 연구개발 분야에 도입한 '충돌안전 AI 어시스턴트'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과거 엔지니어가 과거 충돌시험 자료를 일일이 뒤지던 방식에서 벗어나 AI가 유사 사례의 시험 조건, 차량 구조, 상해 발생 원인, 개선 방안 등을 함께 분석해준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관련 사례 탐색과 분석자료 검토 시간이 약 90% 단축됐다. 이는 엔지니어가 검색에 쓰던 시간을 설계 개선과 시험 전략 수립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공장 현장에서도 카메라와 비전 AI가 차량식별번호를 판독해 실제 생산 차량과 시스템상의 차량 정보를 실시간 대조하는 'AI 자동화 인식 서비스'를 통해 연간 52억 4000만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다. 현대차는 제조 특화 플랫폼 'E-FOREST: POLARIS'를 구축해 품질·생산·설비·물류 담당 엔지니어들이 직접 AI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AI 개발을 IT 조직만의 영역에서 떼어내고 현장의 경험과 노하우를 AI 에이전트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실현하고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AI를 제품 개발과 생산 공정 분석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다. LG전자가 개발한 웹 기반 AI 플랫폼 'Eng.AI'는 제품 품질 예측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했다. 과거 시제품 제작 전 제품 품질을 예측하려면 3~8시간의 시뮬레이션 작업이 필요했지만, AI 기술을 이용하면 3분 안에 예측할 수 있다. 품질 예측 시간이 최대 99% 단축된 셈이다. LG전자는 AI 학습 시간도 기존 딥러닝 방식보다 95% 이상 줄였고 메모리 사용량은 10분의 1 수준으로 낮추면서 정확도는 15% 이상 높였다. 생산설비 관리에도 생성형 AI가 도입돼 작업자가 "오후 2시 A설비 이상 떨림"이라고 말하면 시스템이 이를 기록하고 유사한 이상 현상과 과거 조치 방법을 제시한다. 비전 AI는 설비 이상과 제품 불량뿐 아니라 안전모나 작업조끼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작업자까지 식별한다. 삼성전자는 더욱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2030년까지 국내외 생산거점을 'AI 자율공장'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자재 입고부터 생산과 출하까지 모든 공정에 디지털 트윈 기반 시뮬레이션을 적용하고 품질·생산·물류 분야에 AI 에이전트를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단순히 공장 자동화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제 발생 가능성을 예측한 뒤 필요한 대응까지 제시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지난 6월 DX부문 임직원들이 챗GPT·제미나이·클로드를 모두 업무에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으며, R&D와 생산, 마케팅, 지원 등 전체 업무 밸류체인에 AI를 적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터리 소재 업계도 AI 경쟁에 본격 진출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달 전사 AI 전환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2028년 상반기까지 원료 수급부터 제품 생산, 고객사 협업에 이르는 전 과정에 AI를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목표도 구체적이다. 피지컬 AI를 제조공정에 적용해 생산성을 30% 높이고, AI를 활용한 기술 트렌드 분석과 설계·가상검증을 통해 제품 개발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한다는 것이다. 품질 문제 대응 속도도 현재보다 두 배 높이기로 했다. 한국타이어는 타이어 패턴을 학습해 디자인을 생성하는 AI 모델을 활용하고 있으며 스마트타이어 센서 데이터를 이용한 마모·마찰 알고리즘과 AI 기반 주행시험을 개발하고 있다. 챗HK를 활용해 글로벌 고객의 타이어 성능 리뷰를 분석하는 VOC 분석 시스템도 운영 중이다.
제조업의 AI 경쟁은 이제 생성형 AI 서비스 도입 여부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려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를 사내에 개방하는 기업은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경쟁의 승부처는 직원이 AI를 이용해 실제로 얼마나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그 결과를 생산성과 비용 절감, 품질 개선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앤컴퍼니가 해커톤과 KAIST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현업 직원에게 AI 개발 경험을 넓히고, 현대차가 공장 엔지니어에게 직접 AI 에이전트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AI가 제품 개발과 생산 공정을 직접 분석하는 수준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으며, 포스코퓨처엠은 아예 생산성 30% 향상과 개발기간 절반 단축 등 정량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결국 제조업 AI 경쟁의 승부처는 '가장 뛰어난 AI 모델'을 보유했는지가 아니라 생산라인과 연구실, 품질·물류 현장에서 AI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사람과 함께 일하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