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개혁 앞장선 명진스님 입적, 1000일 기도·사회참여로 종단 변화 주도
불교 민주화운동과 종단 개혁을 주도한 명진스님이 22일 입적했다. 봉은사 1000일 기도와 투명한 재정 공개로 사찰 운영의 모범을 보였으며, 노동 현장과 사회적 참사 현장에서 적극적 목소리를 냈다. 2017년 제적 처분 후 9년 갈등을 법원 판결로 화해하고 올해 2월 복권된 지 반년 만의 입적이다.
한국 불교계의 상징적 인물이자 행동하는 수행자로 불렸던 명진스님이 22일 입적했다. 세수 76세, 법랍 52년의 삶을 마감한 스님은 1980년대 불교 민주화운동부터 최근까지 종단 개혁과 사회참여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다. 제주 서귀포시 인근 바다에서 프리다이빙 연습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해경은 스님이 평소 무릎 불편으로 인해 최근 5년간 프리다이빙을 해 오던 중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명진스님의 삶은 한국 불교의 현대사와 맞닿아 있다. 1950년생으로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한 스님은 성철스님 밑에서 수행했으며, 1972년에는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초기에는 송광사, 봉암사, 상원사 등 여러 선방을 돌며 50차례 이상의 안거를 통해 선(禪) 수행에 정진했다. 그러나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담은 영상을 접한 후 스님의 삶은 크게 변했다. 광주항쟁이 국가권력의 탄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스님은 "이럴 때 중은 혼자 수행만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스님은 불교의 자주성을 요구한 1986년 '9·7 해인사 전국승려대회'에 참여했으며, 이듬해 불교탄압대책위원장을 맡아 종단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1994년 서의현 당시 총무원장의 3선 연임에 반대하며 벌어진 조계종 개혁 때는 개혁회의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종단 개혁의 한복판에 섰다. 통일과 남북교류에도 관심이 깊어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에서 활동했으며 2005년에는 본부장을 맡았다. 통일전문지 '민족21'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남북 민간교류에도 참여했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농성장과 세월호 참사 현장, 촛불집회 등 사회 현안의 현장을 찾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스님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06년 봉은사 주지 임명이었다. 당시 총무원장 지관스님에 의해 서울 강남의 대형사찰 봉은사 주지로 임명된 스님은 그해 12월부터 산문을 나서지 않는 1000일 기도에 들어갔다. 이는 종단 내 분규로 얼룩졌던 봉은사의 운영을 투명하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2007년 사찰의 예산과 재정을 외부에 공개한 스님의 개혁 노력은 등록 신도와 재정 규모의 급증으로 이어졌으며, 봉은사는 도심 포교와 사찰 운영의 모범 사례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1000일 기도 중 산문을 나선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 때가 유일했으며, 기도를 마친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용산참사 현장이었다.
그러나 봉은사는 갈등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2010년 조계종이 봉은사를 총무원장 직할 직영사찰로 전환하기로 하자 스님은 정치권의 외압을 의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자승 총무원장에게 자신의 퇴출을 요구했다는 주장을 폈고, 이는 종단과 정치권을 수개월간 뒤흔들었다. 스님은 그해 11월 임기를 마치며 봉은사를 떠났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2010년부터 스님의 동향을 파악하고 '좌파 활동 경력'을 온라인에 확산하도록 국정원에 지시했다는 사실은 뒤늦게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의 조사결과로 드러났다. 공개된 국정원 문건에는 스님의 봉은사 주지 연임을 막고 온라인에서 비판 여론을 조성하는 방안 등이 담겨 있었다.
봉은사를 떠난 이후에도 스님은 종단 운영과 재정 문제에 대한 비판을 계속했다. 2017년 4월 조계종으로부터 최고 수위의 징계인 제적 처분을 받았으나, 종교·시민사회 인사들이 징계 철회를 요구하며 저항했다. 스님은 2023년 제적 결정이 무효라며 조계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지난해 스님의 손을 들어주었다. 조계종과 스님은 올해 2월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기로 하면서 9년 가까이 이어진 오랜 대립을 화해로 마무리했다. 제적 무효 판결 이후 불과 반년 만의 입적이었다. 장례는 조계종과 시민사회가 함께 치르기로 했으며, 빈소와 영결식은 봉은사에서 봉행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