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적극적 빚 탕감 정책, 해외와는 '다른 길' 걷다
정부가 장기 연체 채무자의 빚을 과감하게 탕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주요 선진국들은 정부 주도 채권 소각보다는 민간 중심의 채무조정 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있다. 반복적인 정부 기금 조성에 대해서는 상환 의지 약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금융회사의 자체 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장기 연체 채무자들의 빚을 과감하게 탕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선진국들은 이와 다른 방식으로 채무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당국이 새도약기금을 조성해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의 개인 채권을 직접 사들이고 소각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라는 평가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우리나라는 빚을 탕감해주는 것에 대해 가혹하리만큼 엄격하다"며 "5년, 10년 된 장기연체 채무를 정리하는 것은 서구 사회에는 아주 기본적"이라고 언급했다. 계좌와 카드 개설도 못 하는 장기 연체자들을 정상적인 납세자와 소비자로 복귀시키는 것이 사회 전체의 효용을 높인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정책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빚 탕감 정책의 배경에는 한국의 독특한 금융 구조가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의 구조 조정 과정에서 채권 추심 기능이 대부업권에 넘겨졌고, 이후 대부업체들이 금융회사로부터 부실채권을 대거 매입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소멸시효를 기계적으로 연장하고 장기간 추심하는 관행이 고착화되면서, 일반적인 선진국과는 다른 채무 문제가 심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정부가 직접 나서 기금을 조성해 채권을 소각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한국의 특수한 금융 환경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정부가 직접 기금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개인 채무를 소각하는 정책을 거의 시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경우 2010년 오바마 행정부가 금융위기 이후 모기지대출조정프로그램(HAMP)을 시행했지만, 이는 금융기관이 금리를 인하하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는 형태였지 정부가 직접 채권을 소각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영국과 미국 등 서구 선진국들은 오히려 민간 중심의 채무조정 문화를 활성화시켰다. 민간기관이나 비영리 단체가 취약 차주의 상환 능력을 평가해 채무조정 협상을 중개하면, 채권자들의 수용력이 높은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영국의 금융행위감독청(FCA)은 소비자보호 의무를 통해 취약 채무자가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채권기관을 규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금융회사가 소비자 관점을 내재화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정부의 반복적인 채무 탕감 정책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포용금융 관련 보고서에서 국민행복기금, 새출발기금, 새도약기금 등 반복되는 채권 소각 프로그램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정부 주도의 채권 소각이나 대규모 기금 매입은 상환 의지를 약화할 수 있다"며 "일회성 채무 구제 방식보다 금융회사의 선제적 연체 채권 관리와 상시적 채무조정의 효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정부의 일방적 채무 탕감보다는 금융회사가 자체적으로 채무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 유인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채무 탕감 정책이 경제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적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채무 탕감을 통해 소비와 세수가 실제로 어느 정도 증가하는지를 수치로 입증해야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앞으로는 당국의 직접적인 개입보다는 금융회사가 자체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서구의 민간 중심 채무조정 문화를 참고해 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이를 통해 일시적 구제를 넘어 장기적으로 취약 차주의 금융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