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금융 150조 중 58%가 대기업으로… 중소기업은 담보 요구 늘어
정부가 추진 중인 생산적 금융 150조 원 중 58%가 대기업으로 쏠리고 있으며, 중소기업 대출의 78.5%가 담보를 요구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대기업 대출 증가율이 중소기업의 3배를 넘으면서 금융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생산적 금융이 명목과 달리 대기업 중심으로 쏠리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올해 5월 말 기준 생산적 분야 자금 공급 규모 150조 원이라는 수치는 인상적이지만, 5대 시중은행의 실제 대출 흐름을 들여다보면 투자 위험이 적은 대기업과 담보 중심의 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이 부동산과 가계 대출에서 벗어나 첨단 전략산업 등 생산적인 분야로 자금을 돌려야 한다는 정책 취지와 현실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 대출 현황을 분석해보면 양극화가 뚜렷하다. 지난해 7월 말 877조 원대였던 5대 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올 7월 말 924조 원으로 약 47조 원 증가했는데, 이 중 58%인 27조 원 이상이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갔다. 구체적으로 대기업 대출은 지난해 7월 164조 원에서 올 7월 192조 원으로 16.6% 증가했다. 반면 중소기업(개인사업자 제외) 대출은 같은 기간 340조 원에서 359조 원으로 5.5% 증가하는 데 그쳤다. 대기업 대출 증가율이 중소기업의 3배를 넘은 것이다. 이는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부도 위험이 낮은 대기업 대출에 경영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문제적인 것은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방식이다. 5대 은행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생산적 금융 명목으로 취급한 중소기업 대출 중 78.5%가 담보나 보증을 낀 대출로 집계됐다. 이는 기술력은 있지만 담보가 부족한 중소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기술 금융의 취지와 거리가 있다. 실제로 기술 금융에서 5대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도 줄어들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올 6월 기술 금융에서 5대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로, 2022년 6월의 60%에서 4년 연속 하락했다. 이는 대형 은행들이 기술 기반 중소기업 지원에서 손을 놓고 있다는 신호다.
은행들이 이런 영업 관행을 유지하는 데는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대기업들은 매출이 증대되며 투자를 받기 좋은 여건이 조성됐다. 반면 내수에 의존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업황이 악화되면서 신용도가 낮아지고,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위험이 커지고 있다. 또한 은행들이 생산적 금융을 늘리는 과정에서 부실 대출을 줄이고 건전성을 관리해야 한다는 규제 압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5대 금융지주의 위험가중자산(RWA)은 지난해 6월 1417조 원에서 올 6월 1515조 원으로 증가했는데, RWA가 커질수록 은행은 자본을 더 쌓아야 해 대출 여력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당국은 여러 정책을 추진 중이다. RWA 규제를 완화하고, 국민성장펀드 참여 금융기관에 일부 면책을 적용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은행 자체적인 인센티브 제도의 확충이 더욱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금융연구원의 김석기 선임연구위원은 "생산적 금융은 은행이 투자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기업을 선별하는 역량에 달려 있다"며 "부도 위험이 적은 차주를 잘 골라 투자한 은행이 보상을 받는 제도가 시장에 자리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정책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려면 은행들이 성장 가능성 있는 중소기업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