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원, AI로 도시 전체를 설계한다…'데이터 기반 정책' 시대 연다
한국부동산원장이 53개 시스템의 빅데이터를 연결해 AI로 도시 전체를 시뮬레이션하는 '데이터 기반 정책'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집값 논쟁에서 벗어나 주택·교통·일자리를 통합 설계하는 도시 중심 정책으로의 전환을 추진 중이다.

이헌욱 한국부동산원장이 부동산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움직이고 있다. 집값이 얼마나 올랐는지를 사후에 집계하는 수준을 벗어나,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도시 전체가 어떻게 변할지를 인공지능으로 미리 예측하는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기존의 주택 공급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주택, 교통, 일자리, 교육, 여가를 하나의 도시 시스템으로 통합 설계하려는 시도다.
이 원장은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현대 부동산 문제의 본질은 도시 문제"라며 "집값을 잡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좋은 도시공간을 충분히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은 적정한 노력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삶의 공간을 얻고 싶어 한다"며 "도시가 삶의 질을 높이고 혁신성을 유지하려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철학은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 시절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핵심 공약인 '기본주택'을 기획하고 추진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단순히 주택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개발과 교통, 생활 인프라를 함께 고민했던 경험이 현재의 도시 중심 정책 철학으로 이어진 것이다.
부동산원이 구상하는 'AI 기반 도시 운영 플랫폼'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도로를 새로 놓으면 출퇴근 시간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공원을 조성하면 이용 수요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특정 지역에 주택을 공급하면 집값과 주거 수요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AI로 시뮬레이션하는 방식이다. 주택 공급 후보지를 선정할 때도 교통과 일자리, 주거 수요, 가격 변화를 함께 분석해 정책의 효과를 미리 검증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원장은 "부동산원을 단순한 가격 조사기관이 아니라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이터 인프라 기관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며 "결국 데이터가 정책의 기반이며, 부동산원이 보유한 데이터를 활용해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큰 과제는 데이터가 기관과 업무별로 흩어져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원은 청약과 공시가격, 공급통계, 건축행정, 도시정비 등과 관련한 53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각각의 행정 목적과 법적 근거에 따라 데이터가 분절돼 있는 상태다. 이 원장은 "AI 시대에는 이런 칸막이를 허물고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해야 한다"며 "부동산원을 부동산 데이터 분야의 AI 선도기관으로 만들어 데이터 사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을 시작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부동산원은 최근 AX추진본부와 주택공급지원본부를 신설했으며, 도시재생과 정비사업 지원을 넘어 지방자치단체 도시개발 컨설팅과 신규 사업지 발굴까지 지원 기능을 확대할 계획이다.
부동산원은 AI가 분석할 도시의 기초 데이터를 만드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인구밀도, 일자리, 도시 면적, 공원·녹지, 주택 수, 1인당 주거면적 등 도시 삶의 질과 혁신성을 설명할 수 있는 지표를 한데 모아 도시별 경쟁력을 데이터로 보여주겠다는 구상이다. 이 원장은 "올해 하반기까지 초안을 만들고 내년 초에는 공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러한 도시 정책 구상은 그가 최근 펴낸 저서 '넥스트 시티'에도 담겨 있으며, 집값과 공급량 중심의 논쟁을 넘어 주택과 교통, 일자리, 생활 인프라를 함께 설계하는 도시 중심 정책으로 시각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 원장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조심스럽다"며 "임기가 길지 않은 만큼 모든 것을 완성하기보다 토대를 만드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원의 데이터를 활용해 문제의 원인과 현황을 진단하고, 정책을 뒷받침하는 국가 부동산 인프라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는 부동산 정책이 개별 정책 논쟁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도시 설계로 진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