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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법안 통과율을 데이터로 예측하는 로펌들, AI 시대 대관 업무 재편

로펌 대관팀이 국회의원실 방문에서 AI 데이터 분석으로 전환하면서 법안 통과 가능성을 정량화하고 있다. 기업 법무팀도 AI 도입으로 로펌 의존도를 줄이고 있으며, 개별 로펌까지 AI로 운영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중이다.

로펌의 대관팀이 국회의원실을 발이 닳도록 드나들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과거에는 의원실의 말 한마디에 의존하며 일해야 했던 대관 업무가 인공지능 데이터 분석으로 완전히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법무법인 화우의 대관팀은 기재위 소관 법안의 경우 의원 전원의 발의 이력, 소위원회 발언, 정치 성향, 경력을 모두 AI에 입력해 법안 통과 가능성을 '9.3점' 같은 정량적 점수로 산출한다. 이제 의원실을 방문할 때 확신 있는 데이터를 들고 가기 때문에 의원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홍정석 변호사는 "의원님이 관심 많으실 것 같아 찾아왔습니다"라며 데이터를 제시하면 관심 없던 의원도 귀를 기울인다고 설명했다.

로펌 대관팀이 감이 아닌 데이터로 일하게 된 배경에는 기존 방식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홍 변호사는 "재판은 기일이 있고 선고가 나면 끝나는데, 대관은 기일도 판결문도 없어 내가 일을 했다고 증명할 수 없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의원실이 "해줘야지"라고 약속했다가 뒤돌아서서 "요새 바빠서"라며 발을 빼는 일이 다반사였고, 타임라인이 어그러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기업 의뢰인들도 "보좌관이 그러더라"는 전언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AI 분석 보고서를 윗선에 보고하는 방식으로 바뀌자 기업들, 특히 외국계 기업들의 신뢰도가 급상승했다.

AI 기반 데이터 분석 방식은 미국에서 이미 산업화된 모델이다. 미국 국회의원 출신으로 법률·정책 빅데이터 플랫폼 '피스컬노트'의 아시아·태평양 어드바이저를 지낸 송호창 변호사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예산소위와 법안소위 회의록까지 공개한다. 하루에 수천 건이 올라오는 이 데이터를 AI 봇이 실시간으로 수집해 분석하고 발언자까지 식별해 공식 속기사보다 먼저 회의록을 만들어 판다. 뉴욕 증시에 상장한 피스컬노트는 1940년대부터 의회에 상주해온 기자 300여명을 보유한 언론사 CQ를 인수해 비공개 정보까지 검증한다. 송 변호사는 "로봇이 전량을 수집하고 기자가 빈틈을 메우는 구조에, 인맥으로 일하던 워싱턴 로펌들이 거꾸로 이 서비스를 구독한다"고 설명했다. 인적 네트워크로만 일하면 의회 정보가 인맥 범위로 한정되지만, AI 크롤링과 결합하면 로펌 수준의 정보 격차가 생기는 것이다.

AI 도입은 기업 법무팀의 업무 방식과 로펌에 대한 셈법까지 바꿔놨다. SK온의 이윤석 변호사는 계약서를 AI에 입력한 후 어떤 계약인지, 어떤 조건이며 누구에게 유리한지 큰 틀을 먼저 본다고 했다. 처음 보는 법령 앞에서도 AI가 무엇을 규율하고 어디를 조심해야 하는지 짚어준다. 다만 그는 AI 답변에 대한 '최초의 비판자' 역할이 자신의 본질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AI는 사용자가 원하는 답 쪽으로 기울어 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간단한 질의도 건건이 로펌에 문의했지만, 지금 기업 법무팀은 "이 정도는 AI로 되겠다"는 판단 아래 자체 해결하고 정말 판단이 필요한 사안만 로펌에 넘긴다. 그 결과 로펌에 도착하는 질문의 난이도는 올라가고 건수는 줄어드는 구조가 됐다. 기업 법무팀이 로펌에 묻는 말도 바뀌었다. "그쪽도 AI 쓰시죠? 그럼 얼마나 수임료를 깎아주실 수 있나요?"

개별 로펌의 운영 시스템까지 AI로 재구축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윤정 법률사무소의 윤세환 변호사는 사건 관리와 의뢰인용 포털 개발 견적이 8천만원에 달하자 AI 코딩 도구 '클로드'를 활용해 직접 시스템을 구축했다. 법원에 문서가 제출되면 문자 알림이 오고, 기일과 마감을 놓치지 않게 리마인드 알람이 뜬다. 모든 작업 기록이 송무일지처럼 쌓여 보수 청구 근거이자 인수인계 자산이 된다. 서면 작성도 AI를 활용한다. 사건기록 폴더를 지정하면 AI가 증거를 찾아 '갑 제1호증'으로 인용하고 제출 형식까지 만든다. 검증 루프의 백미는 "9.5점을 넘을 때까지 스스로 고쳐라"고 지시하면 AI가 20회 이상 초안을 수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글을 이제 과학 실험처럼 쓴다. 공식을 만들어서 문서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의원실을 도는 발품은 데이터 보고서가 됐고, 몸에 밴 퇴고의 감각은 AI 프롬프트가 됐으며, 8천만원짜리 외주는 셀프 코딩이 됐다. 대관 업무도, 법무팀의 하루도, 변호사 사무실 운영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일을 잘한다는 정의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소송의 모든 것은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기에 법조계가 AI의 영향을 가장 빠르게 받고 있다. 고소득 선망 직종인 법조의 변화는 화이트칼라 전체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