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기 사건 부실수사 적나라… 경찰 수사팀 '강간살인' 혐의 은폐
경찰청 특별수사단이 장윤기 사건의 초동 수사팀이 강간살인 혐의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고 발표했다. 핵심 증거물인 케이블타이와 성인용 인형을 압수하지 않거나 폐기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사팀장이 팀원의 성적 동기 관련 보고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정황도 확인됐다.
경찰청 진상규명 특별수사단이 15일 광주에서 열린 중간수사 결과 브리핑을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했다.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가 피해자를 사건 발생 수개월 전부터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며, 초동 수사팀이 강간살인의 성격을 명확히 파악하고도 이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홍장득 특별수사단 부단장은 "장윤기는 여고생을 일방적으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건 발생 수개월 전부터 피해자를 알고 있었다는 흔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목적성 있는 범죄였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광산경찰서 초동 수사팀의 부실수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범행 당일인 5월 5일 수사팀이 장윤기의 주거지와 차량에서 발견한 케이블타이와 성인용 인형(리얼돌)은 강간 목적을 직접 입증할 수 있는 핵심 증거물이었다. 그러나 수사팀은 이들 증거를 압수하지 않았고, 리얼돌은 장윤기의 아버지인 현직 장모 경감이 직접 폐기처분했다. 범행에 이용된 차량에 있던 SD카드와 USB 역시 수사팀이 압수하지 않고 장 경감에게 돌려줬으며, 이후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이들 증거물을 확보해 강간살인죄 적용의 핵심 근거로 사용했다.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케이블타이와 리얼돌이 수사초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살인동기가 성적 목적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정황이 나왔는데도 수사팀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사팀 내부에서 의도적인 증거 은폐 지시가 있었다는 점이다. 광산경찰서 수사팀장(경감)은 팀원들로부터 여러 차례 성적 목적과 관련된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보고서에서 성적 부분을 삭제하고 다시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팀원에게는 "사건을 성적으로 몰아가지 말라"며 조사 범위를 제한하기까지 했다. 특별수사단은 이러한 수사팀장의 행동이 독단적 판단인지, 아니면 윗선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를 규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구속된 수사팀장으로부터 윗선의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며, 강력팀장은 경찰 조사에서 "윗선에서 스토킹과 살인사건을 연결시키지 못하도록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은 경찰과 검찰 간의 주도권 경쟁도 드러냈다. 검찰은 광산경찰서장과 형사과장, 수사팀장, 팀원 등 4명을 증거인멸과 방조 혐의로 입건했으며, 경찰은 광산경찰서장과 형사과장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증거은닉 혐의로 구속됐던 수사팀장에게는 추가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가 붙었고, 15일 검찰에 송치됐다. 검찰이 7일과 10일 광산경찰서장실과 강력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경찰은 11일 뒤늦게 동일한 장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피의자와 참고인 조사도 경찰과 검찰이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12일 경찰 조사를 받은 광산서 형사과장은 다음 날 오전 검찰에서 다시 조사를 받았다.
특별수사단과 검찰은 현재 윗선의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수사 중이다. 살인강간죄 혐의가 초동 수사팀원의 보고에서는 적용됐으나, 수사팀장을 거쳐 형사과장, 경찰서장을 거치면서 단순 살인죄로 격하된 과정이 주목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어디까지 정해놓고 수사를 하지 않는다"며 "수사상황에 따라 누구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초동 수사의 중요성과 함께 수사기관의 독립성, 그리고 증거 관리의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찰청과 검찰이 벌이는 주도권 경쟁 속에서 진실 규명과 정의 실현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