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의 재개, 실질 개선 과제는 외면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둘러싼 논의가 재개되고 있다. 정부 공론화 결과는 조건부 1세 하향을 권고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2년 하향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전문가들은 연령 문제만 초점이 되면서 보호처분 인프라 확충 등 실질적 소년사법체계 개선이 외면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형사미성년자인 촉법소년의 처벌 연령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월부터 진행된 정부의 공론화 결과를 '너무 약하다'고 평가하면서 연령 기준을 재논의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성평등가족부가 보고한 공론화 결과는 강력·중대·반복 범죄에 한해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1세 하향하는 것을 권고했지만, 대통령은 이를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1년이냐 2년이냐 범위 내에서 한 번 더 토론해보고 국민 의견도 수렴해보자"고 언급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12세로 하는 경우도 꽤 많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주목할 점은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들의 인식이 상당히 변화했다는 것이다. 공론화 참여 전후로 촉법소년에 대한 시민 인식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촉법소년은 처벌보다 범죄 예방 지원이 우선'이라는 의견은 5점 만점에 3.7점에서 4.2점으로 상승했고, '촉법소년이 과거보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다'는 인식은 4.2점에서 3.9점으로 하락했다. 특히 현행 법정 연령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5.7%에서 17%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충분한 정보 제공과 숙의 과정을 통해 시민들이 문제를 더 균형 있게 판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성평등가족부는 시민참여단이 촉법소년도 최대 2년간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점과 비행 청소년 상당수가 학대·방임 등 취약한 성장환경에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서 인식이 변한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재논의 지시가 공론화의 성과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이지연 연구위원은 "공론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최종 결론보다 숙의를 거치며 시민 인식이 변화했다는 점"이라며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면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숙의 결과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배상균 연구위원도 "청소년 비행 전반을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구상은 빠져 있고, 결국 연령 하향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공론화 과정에서 확인된 시민들의 인식 변화는 단순한 엄벌주의보다 교육과 보호에 기반한 접근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소년사법체계 전반의 개선 과제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공론화 과정에서 시민참여단과 전문가 협의체는 연령 문제와 함께 피해자 권리 보호, 경찰 조사 기준 마련, 보호처분 인프라 확충, 가족 기능 회복, 청소년 정신건강 지원 등을 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전문가 협의체는 가족치료명령 신설, 피해자 권리 보장, 소년재판 전문인력 확충 등 소년사법체계 개선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연령 하향 논의가 다시 중심이 되면서 이러한 실질적 개선 방안들은 또다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실제로 이날 국무회의에서는 전문가 협의체가 권고한 소년사법체계 개선 방안이 별도로 논의되지 않았다.
해외 사례는 단순한 연령 하향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한세대 경찰행정학과 박선영 교수는 "미국, 덴마크 등 해외에서는 오히려 연령 하향 이후 재범이 늘어 다시 연령을 상향하거나 상향을 검토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소년 비행은 가정과 학교, 사회 안전망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만큼 연령을 낮추는 것보다 보호와 교육, 회복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나이를 낮춘다고 해서 청소년 범죄가 감소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적 안전망 강화와 교화 중심의 사법체계 구축이 재범 방지에 더 효과적임을 시사한다. 연령 하향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정책 결정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어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