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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중산층의 '사회계약' 붕괴···15년 만에 재조명된 한국 주거문화의 변화

박해천 교수가 15년 만에 개정판을 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와 중산층의 관계 변화를 추적한다. 1970년대 중산층 육성의 '사회계약'이었던 아파트는 현재 계층 분화의 상징으로 변모했으며, 이는 한국 사회의 계급화 완료와 정치적 보수화로 이어지고 있다.

아파트와 중산층의 '사회계약' 붕괴···15년 만에 재조명된 한국 주거문화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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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중산층의 사고방식 자체를 대표해왔다. 1970년대 중후반 분양가 상한제를 통해 등장한 아파트는 '월급쟁이도 열심히 일하면 집을 소유할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의 상징이었다. 박해천 동양대 디자인학부 부교수가 2011년 펴낸 저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러한 아파트의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깊이 있게 분석한 기념비적 저술로 평가받아왔다. 15년 만에 개정판을 낸 박해천 교수는 그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변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최근 서울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박 교수는 '아파트를 둘러싼 중산층의 욕망'이 한국 사회의 계급화를 심화시켜왔다고 지적했다.

박해천 교수는 1990년대 초반 주택 200만호 건설과 신도시 개발이 한국 사회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꾼 시점이라고 본다. 당시 분양가 상한제는 대졸 화이트칼라 집단에게 "취업 후 가정을 이루고 소득을 늘리며 목돈을 저축하면 생애 주기의 특정 단계에서 내 집 마련을 통해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약속을 제시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유지된 이 모델은 월급쟁이가 7~8년 저축하면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로 책정되어 있었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아파트에 살면서 나는 아파트가 하나의 거주 공간이 아니라 사고 양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중산층의 사고방식이다"라고 표현했듯이, 아파트는 단순 주거를 넘어 중산층 정체성 형성의 핵심 요소였다. 박 교수는 이렇게 형성된 계층을 '신중산층'이라고 부르며, 이들이 한국 사회의 주류 계층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추적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 중산층 양산 모델은 급속도로 약화되기 시작했다. 박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 모델은 허약하게 유지되다가 결국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2006~2007년 등장한 '강남좌파'라는 신조어는 이 변화의 상징적 지표였다. 과거 비판적 지식인들이 대안으로 내세웠던 민중 모델마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상당수가 중산층으로 편입되었던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 더 나은 삶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일종의 사회계약이 20년에 걸쳐 와해되고 있었다. 박 교수는 이 과정을 "각개전투가 벌어지는 과정"이라고 표현했으며, 한국 사회가 합의와 타협의 경험 없이 통치 세력의 명령에 의해 중산층 모델을 강요받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의 아파트는 새로운 방식의 계층 분화를 보여주고 있다. 강남 주요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리조트나 호텔을 모방한 조경, 프리미엄 커뮤니티 시설 등으로 차별성을 드러내는 '브랜드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박 교수는 "상급지라 불리는 곳은 요새화가 완료된 상태"라며, 미국이나 홍콩의 '게이티드 커뮤니티'처럼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보안성을 추구하는 주거 단지 모델이 한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상위 중산층이 기존 중산층과 구별되는 계층적 정체성과 라이프스타일을 구성해나가는 과정을 반영한다. 아파트 내부 평면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외향적 고급화와 차별화는 중산층 내부의 심각한 분화를 드러내는 지표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2020년대 이후 정치적 선택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박 교수는 "2010년대만 해도 이에 대해 비판적인 분위기가 꽤 퍼져 있었는데, 여러 정치사회적 사건을 거친 젊은 세대들은 이를 '게임의 규칙'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일종의 자포자기, 냉소, 자기연민이 뒤섞여 있는 정서이며,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2030 보수화' 현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강남 1세대가 창안한 아파트 갈아타기와 재산 증식 방식은 지금도 상위 중산층을 중심으로 교육 방식과 함께 이어지고 있으며, 이들 자녀의 상당수가 아파트를 경유해 다양한 방식으로 자산을 증여받고 있다. 박 교수의 개정판은 이러한 15년간의 변화를 반영하면서도, 아파트라는 공간이 한국 사회의 계급화 과정에서 얼마나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는지를 다시 한번 조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