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5·18 조롱 사태, 가해자-피해자 역전 논리 심화
배재고 야구부의 5·18 조롱 응원 사태에서 일부 보수 정치인과 언론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를 역전시키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가해 행위를 부정하거나 원인을 피해자의 민감성과 진영 정치에 돌리는 방식으로, 결국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지난 6월 29일 광주일고와의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경기 중 지역 혐오 성격의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배재고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응원가를 부르고 "탱크데이"라고 외친 것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의도로 해석되면서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다. 이는 지난 5월 스타벅스가 5월 18일 텀블러 이벤트에 '탱크데이'라는 문구를 사용해 논란이 된 사건을 염두에 두고 광주와 광주일고를 모욕하는 응원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건의 전개 과정은 명확했다. 배재고는 즉시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고, 이튿날 한 번 더 사과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배재고 야구부에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가해 행위가 확인되고, 사과가 이루어졌으며, 처벌이 결정되는 명료한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배재고 선수들은 이후 광주일고를 직접 찾아 사과문을 전달했고, 광주일고도 재심 청구에 앞서 선처를 구하는 입장을 표했다. 겉으로는 사건이 수습되는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일부 보수 정치인과 언론이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바꿈이 시도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은 배재고 앞에 응원 화환을 보내며 '스타벅스가 5·18과 무슨 관계냐'는 메시지를 전했다. 같은 당 김민전 의원은 "학생들의 철없는 응원을 너무 쉽게 지역 혐오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옹호했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배재고가 징계받은 피해자가 되고, 응원에 항의한 광주일고가 가해자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 만들어진다. 이는 2013년 가수 아이유가 악플러 처벌 과정에서 경험했던 상황과 유사하다. 아이유는 당시 "이거 뭐야, 내가 가해자인가 싶을 정도로 헷갈렸는데 뭐 처벌은 해야죠"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현재 배재고 사태도 정확히 같은 패턴을 따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 심화된 형태의 책임 전가도 나타나고 있다. 김재섭 의원은 배재고 선수들의 행태를 "저열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징계 수위가 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당 기득권의 스타벅스 때려잡기와 무차별적인 일베 몰이가 청소년 사회에 불러온 뒤틀린 백래시"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가해 행위는 인정하지만 그 원인을 배재고의 혐오가 아닌 민주당 진영에 돌리는 논리다. 나경원 의원은 이번 사태를 "민주당의 분열 정치가 빚어낸 과잉 이념화 촌극"이라고 명명했다. 이병태 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은 "5·18이 성역이 된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 침해를 우려했다가 논란 끝에 권고 사퇴했다. 이들의 담론 구조에서는 5·18 추모와 지역 혐오 금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결과적으로 광주와 피해자들이 가해자로 전환된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통해 "사과와 용서로 해결해야 할 학생들의 잘못을 어른들이 앞장서서 증폭시키고 정치권이 가담해 진영 대립으로 몰고 갔다"며 사건의 원인을 어른들의 과도한 반응에 돌렸다. 하지만 이는 "수업의 연장인 운동장에 학교 밖에서 만들어진 호남 비하와 5·18 조롱의 언어를 가져와 휘두른 것은 가해자들"이라는 가장 단순한 사실관계를 외면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배재고 선수들의 직접 사과 방문과 광주일고의 선처 구하는 과정을 아름다운 화해로 묘사하는 언론의 반응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과정이 진정한 교육적 기회인지, 아니면 가해자들에게 가해진 압박 속에서 이루어진 형식적 절차인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결국 이 사건이 보여주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명백한 가해-피해 관계가 지속적인 재해석과 책임 전가를 통해 역전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해 행위 자체를 부정하거나, 인정하더라도 그 원인을 피해자의 민감성이나 진영 정치에 돌리는 방식은 결국 피해자에게 화해와 용서를 강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존중과 지역 혐오 금지라는 기본적인 가치마저 상대적 입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배재고 학생들이 받은 처벌이 과한지는 논의할 수 있지만, 그 논의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뒤바꾸려는 시도는 또 다른 형태의 가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