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소, 미국 군함 10척 건조 프로젝트 본격화
이재명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 조선소의 미 군함 건조 사업을 협의했으며, 미국 국방부가 국내 조선사에 정보 요청서를 발송하면서 프로젝트가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동시에 연 15조원 규모의 나토 방위산업 시장 진출을 위한 조달기본협정 협상도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만나 한국 조선소의 미 군함 건조 사업에 대한 후속 협의를 진행했다. 이는 지난달 프랑스 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대통령에게 "군함 10척을 빠르게 건조할 수 있느냐"고 제안한 지 불과 3주 만의 일이다.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며 국내 조선사를 직접 소개했다고 밝혔다. 이번 만남은 한미 조선업 협력이 단순한 제안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실행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미국 국방부와 해군이 최근 국내 주요 조선사 3곳에 정식 정보 요청서(RFI)를 발송하면서 프로젝트의 현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 국방부는 전투함에 관한 정보를, 해군은 급유함에 관한 정보를 요청했다. 이에 응하여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충남급 3000톤급 호위함의 설계·건조 역량 자료를 제공했고, 삼성중공업을 포함한 3사는 중형급 급유함 건조 정보를 회신했다. 정보 요청서는 사업 추진 전 가격, 납기, 생산 여력 등을 확인하는 절차로, 이는 정식 입찰제안요청서(RFP) 발송을 앞둔 발주 실무 절차의 시작을 의미한다. 미 행정부는 회신받은 정보를 검토한 후 정식 입찰 단계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추진하는 배경은 자국 조선 산업의 심각한 쇠퇴에 있다. 미 해군은 2055년까지 배수량 3만~4만톤 규모의 트럼프급 전함 15척을 도입할 계획이지만, 자국 조선소만으로는 필요한 함정을 제때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 해군은 지난 5월 발표한 조선 계획에서 처음으로 동맹국 조선소가 함정 모듈을 제작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이는 기존의 미국 내 단독 제조 정책에서 큰 전환이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적 필요성과 자국 산업 부활이라는 경제적 목표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한국 조선사가 미 군함을 수주하게 되면 국내에서 블록과 모듈을 제조한 후 미국 현지에서 최종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번스톨리프슨법이라는 자국 조선 보호 규정을 완화하여 한국 내 건조를 승인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법은 미국 정부 선박의 외국 조선소 건조를 금지하는 규정이지만, 동맹국에 대한 예외 조항을 마련할 여지가 있다. 이러한 법적 절차가 완료되면 한국 조선소의 미 군함 건조는 더욱 현실화될 것이다. 또한 한국 조선업계의 높은 기술력과 경쟁력, 그리고 빠른 납기 능력이 미국의 전략적 선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국내 조선 산업에 상당한 규모의 수주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번 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더욱 광범위한 방위산업 협력도 추진 중이다. 이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간 면담을 통해 한·나토 조달기본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공식 시작했다. 협상이 타결되면 연 15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나토 공동 조달 시장에 진출할 발판이 마련된다. 32개 회원국으로 이루어진 나토는 세계 국방비 지출의 55%를 차지하는 최대 규모의 방위산업 시장이다. 그동안 비회원국은 나토와의 기술 표준 차이로 인해 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웠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나토 유럽 회원국들이 한국의 생산 역량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가급적 조속히 타결하려고 한다"고 밝혔으며, 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재건을 위한 1억달러 규모의 포괄적 지원을 약속하는 등 나토와의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다.
한편 한·미·일 외교장관은 앙카라에서 열린 외교장관회의에서 제3국 소형모듈원전(SMR) 배치 협력 각서에 서명했다. 이는 군함 건조 협력과 함께 한반도 주변 안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포괄적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한국 조선 산업이 미국의 국방력 강화와 동맹 관계 공고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