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홀 원리로 만든 초경량 AI안경 부품, 일본·스위스 기업에 수출 성공
국내 벤처 레티널이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원리를 응용한 '핀홀 효과' 기술로 초경량 AI안경 광학 모듈을 개발했다. 플라스틱 렌즈 내 초소형 거울 배치 기술로 가벼우면서도 선명한 영상을 구현하는 데 성공해 일본 NTT, 스위스 에이지스 라이더 등 글로벌 기업에 부품을 공급 중이다.

스마트안경의 핵심 부품인 광학 모듈을 개발하는 국내 벤처 레티널이 가볍고 선명한 AI글라스 기술로 글로벌 기업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16년 창업한 레티널은 개기일식 현상에서 영감을 얻은 '핀홀 효과'를 응용해 기존 스마트 안경의 무게와 시인성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 현재 일본 통신 기업 NTT와 스위스 증강현실 헬멧 제조사 에이지스 라이더 등 글로벌 기업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누적 625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레티널의 기술 개발 배경은 흥미롭다. 고등학교 동창인 김재혁 대표와 하정훈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과거 개기일식을 관찰하다 나뭇잎 사이 미세한 틈을 통과한 태양 빛이 바닥에 선명한 초승달 모양의 상을 맺는 현상을 목격했다. 작은 구멍을 통과한 빛이 초점 거리와 관계없이 뚜렷한 이미지를 만드는 이 '핀홀 효과'가 스마트 안경 기술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김 대표는 "나뭇잎 틈새로 비친 그림자를 보면서 작은 구멍으로 빛을 제어하면 안경을 아주 얇게 만들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레티널이 개발한 핵심 기술은 '핀미러(PinMR)'와 '핀틸트(PinTILT)'라는 독자적 솔루션이다. 안경 렌즈 안에 머리카락보다 얇은 초소형 거울을 정교하게 심어 빛의 손실을 막고 반사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디스플레이에서 출발한 빛이 미세 거울을 통해 망막에 직접 맺히도록 설계했다. 이를 통해 기존 스마트 안경이 안고 있던 가벼운 무게와 야외 시인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난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무겁고 깨지기 쉬운 유리 렌즈 대신 일반 안경과 동일한 플라스틱 사출 방식을 고집한 것도 차별화 포인트다.
플라스틱 렌즈 내부에 미세한 거울 구조를 오차 없이 균일하게 배치하는 대량생산 공정은 해외 기업들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영역이었다. 그러나 레티널은 수차례 공정을 개선해가며 양산 시스템 구축에 성공했다. 김 대표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양산에 성공하면서 우리 기술이 맞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기술 덕분에 레티널은 가벼운 무게와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시력에 맞춰 도수를 넣거나 난시를 교정하는 일반 안경 가공 공정과의 호환성까지 해결했다.
레티널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완제품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대신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해외 기업들로부터 실제 수주를 이끌어내며 양산능력을 검증받았고, 현재 NTT와 에이지스 라이더 등 글로벌 기업에 부품을 공급 중이다. 지난해 'IR52 장영실상'을 수상하며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김 대표는 "AI 소프트웨어가 아무리 고도화돼도 사람이 어지러움 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광학 하드웨어가 없다면 대중화는 불가능하다"며 "안경의 형태나 외관이 어떻게 변하든 그 내부에 들어가는 광학 모듈 분야에서 독자적 글로벌 표준을 확립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AI 글라스 시장은 앞으로 일상용과 산업용 등 다양한 형태로 다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안경이 단순한 패션 아이템을 넘어 실시간 번역, 맞춤 정보 제공 등 실질적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로 진화하고 있는 가운데, 레티널 같은 핵심 부품 공급업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10년간 기술력을 갈고닦은 레티널이 어떻게 AI 글라스 시장의 표준 기술을 확립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