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을 '신의 축복'이라 한 정치인 발언, 업계 반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반도체 호황을 '신의 축복'이라고 표현한 발언에 산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삼성과 SK는 40년간의 꾸준한 투자와 불확실성 속 경영 판단의 결과라며, 이를 운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향후 초과이익세 등의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반도체 산업의 급속한 성장을 '역사의 신이 준 축복'이라고 표현한 발언이 산업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지난 30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정 장관은 삼성과 SK가 전날 발표한 4755조원 규모의 국내 반도체 투자 계획을 언급하며 이같은 발언을 했다. 정 장관은 이를 1987년 6월 29일 민주화 선언과 비교하며 '지방 소외 지역에 대한 축복'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반도체 기업들의 오랜 노력과 투자를 과소평가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현재의 호황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삼성전자는 1983년 이병철 선대회장의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했고, 당시 '3년 내에 망한다'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40년간 꾸준한 연구개발과 설비투자를 지속해왔다. SK하이닉스도 2012년 최태원 회장이 적자 기업이던 하이닉스를 인수한 후 청주, 이천 등지에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2012년 M12 팹 건설부터 2021년 M16 팹까지 이어진 투자는 모두 '미래 핵심 산업은 반도체'라는 명확한 경영 판단에 기반한 것이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초호황은 거져 온 게 아니며 미래에 대비한 선제적 투자의 결과물"이라고 명확히 했다.
현재의 반도체 호황은 인공지능 메모리 수요 폭증이 계기가 되었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기업들의 수십 년간의 불확실성 속 투자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치킨게임으로 수천억원씩 적자를 보면서도 견뎌내고 투자해 지금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반도체 초강국이 된 게 신의 축복이면, 반도체 호황 덕분에 코스피지수가 9000포인트를 찍은 것도 신의 선물이냐"고 반문했다. 이는 정 장관의 발언이 기업의 경영 성과를 과도하게 축소 평가한다는 비판의 핵심을 드러낸다. 업계는 현재의 성과를 '운빨'로 평가절하하는 것이 향후 반도체 초과이익에 대한 분배 논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정치권의 이같은 인식이 우려되는 이유는 노동계의 '구조적 횡재(windfall)' 주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횡재란 뜻밖의 외부 변화로 인한 예상치 못한 이익을 의미하며, 영국 등 서구 선진국에서는 이에 대해 특별한 세금이나 분배 정책을 적용해왔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의 현재 이익을 횡재로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예상보다 이익이 많이 들어왔다고 해서 그걸 '초과된 이익'으로 판단해 나눠주는 방식의 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명확히 했다. 이는 정부의 반도체 초과이익세 도입 등의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반도체 업계가 강조하는 점은 현재의 성공이 정책 지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삼성과 SK는 정부의 정책 지원이 있었을 때도 있고 없었을 때도 있었지만, 일관되게 미래를 준비하는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민간 기업의 경영 성과를 '신의 축복'으로 표현하는 것은 기업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더욱이 현재의 반도체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이같은 인식이 향후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업계의 핵심 우려사항이다. 반도체 기업들은 현재의 성과를 바탕으로 차세대 기술 개발에 다시 막대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정책적 개입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